글. 홍성연
예술과 패션2부 -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의 혁신 정신과 아티스트
여성 명품핸드백 하면 빠지지 않고 생각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샤넬일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샤넬을 만든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패션을 이끌어가 여성패션의 혁신을 선도한 디자이너입니다. 오늘날 ‘샤넬 스타일’이라고 하면 여성스러운 클래식패션의 대표로 꼽히지만 그 당시 그녀는 간편하고 입기 편한 옷을 디자인하며 장식성이 많은 옷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녀의 제품들은 ‘20세기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록에서도 그녀의 정신을 엿 볼 수 있는데,
“가장 용감한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명백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벽을 내려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벽이 문으로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라” 라고 말하며 그녀만의 디자인을 전개해 나갑니다.
왼쪽부터>조드퍼즈를 입고 넥타이를 맨 가브리엘 샤넬, 도빌 자신의 의상실 앞에서 가디건을 입은 샤넬(1913), 샤넬이 디자인한 블랙미니 드레스(1927)
그녀는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이전에도 최초로 여성을 위한 바지 승마복을 만들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도 여성들은 승마용 드레스를 입고 말을 탔습니다. 그녀는 남성들이 입던 조드퍼즈(Jodhpurs,승마용 바지)를 자신의 사이즈로 수선하여 입고 그녀의 영향으로 당대 여성들이 조드퍼즈를 입고 말을 타기 시작했습니다.1)
1913년 가브리엘 샤넬은 프랑스의 인기 휴양지인 도빌(Deauville)에 자신의 첫 의상실을 개업합니다. 그 중 첫 번째로 출시된 의상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운동복용 옷감 '저지(jersey)'를 이용하여 디자인한 여성용 ‘카디건(Cardigan)’이었습니다. 카디건은 느슨하고 헐렁하게 디자인되어 허리를 조였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었습니다.2)
1920년의 여성패션은 신체의 움직임을 고려하기보다는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길이가 길거나 폭이 좁은 스커트가 유행하였다. 그녀는 스커트의 허리라인을 하이웨스트에서 허리위치로 내리고 치마길이도 무릎에서 10센티미터 가량 내려오는 길이로 잘랐습니다. 이 길이의 스커트는 오늘날까지도 샤넬라인(Chanel line)이라고 불리오고 있습니다.
샤넬 디자인의 정점은 1926년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장례식장에 갈 때 검정 의상을 착용하였는데 샤넬은 그런 블랙 컬러를 드레스에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미니멀한 이 드레스는 몸의 실루엣을 자연스럽게 타고 흘러 활동이 편리하면서도 우아함을 동시에 지녀 오늘날 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금 까지 본 것과 같이 그녀는 여성복의 전통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새로운 미의 개념을 추구하였으며 샤넬의 의상과 미학은 단순함과 우아함으로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4)
왼쪽부터> 샤넬 N°5 향수병,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향수병, 앤디워홀그림(1985)
그녀는 패션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왔습니다.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대표상품중 하나인 향수 샤넬 넘버5(Chanel N5 )는 1921년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 향수는 디자이너의 이름과 번호가 들어간 최초의 향수면서 화려한 장식적인 용기에 담기던 기존향수와 다르게 단순한 사각 디자인을 도입한 향수로 알려져 왔습니다. 또한 당시의 향수들은 장미향과 라일락 향 등의 단일 향으로 된 것들이 지배적이었는데 자스민 향기를 기본으로 80가지 이상의 재료가 더해져 만들어졌고 최초로 알데히드를 사용한 향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5) 당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등 아티스트들이 No. 5 병에 그림을 그려 주었고, 이후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작업에 모티브로 이용하면서 다시 이슈가 되었습니다. 6) 이후 알베르트 머릴로(Albert Murillo)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향수병을 오브제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윗줄 왼쪽부터>가브리엘 코코 샤넬, 1965, 그녀의 아파트, 그녀의 살롱사진
아랫줄 왼쪽부터>코코 샤넬의 초상화 , 장 콕토(1937)“비교할 수없는 코코, 마드모아 젤 샤넬, 그녀의 하얀크레이프 디너 드레스, 그녀의 웅장한 다색 보석과 그녀의 헤어 리본”, 살바도르 달리(1937) “Chanel: Grand Central Powder Room”, 세실버튼(1967) “Chanel National Portrait”
그녀의 서제를 보면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이 꽂혀 있었고 달리의 그림등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장 콕토(Jean Cocteau), 막스 자코브(Max Jacob),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verdy), 세실 비튼(Cecil Beaton)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해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장 콕토와 깊은 관계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1917년 여배우 세실 소렐(Cecile Sorel)의 집에서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1924년에 장 콕토의 작품 <르 트랑 블루 Le Train Bleu>의 무대의상을 담당하였고, 무대장치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제작했습니다. 이러한 친분으로 장 콕토는 각종 잡지에서 샤넬 패션모델들의 스케치를 해주었으며 여러 장의 샤넬의 초상화도 남겼습니다.7) 살바도르 달리와 세실 비튼 등의 아티스트 친구들은 작업에 샤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8)9) 이처럼 샤넬에게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샤넬과 친분이 있던 아티스트 들이 있고 그들의 과의 열정적인 교류는 그녀에게 ‘파리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안겨줬습니다. 그녀 또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받은 영향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샤넬의 디자인은 입체파가 시도했던 실험기법이나 그로부터 파생된 미학적 경향을 패션에 접목하려고 했던 흔적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10) 그녀는 당시 예술과 시대적 특성을 잘 이해하였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단순성과 우아함을 한 대 어우른 현대적 패션의식을 만들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및 이미지 출처
1)https://wanthaveit.com/coco-chanel-and-revolution-of-equestrian-fashion/
2)inside.chanel.com/fr/gabrielle-chanel
3)https://www.harpersbazaar.com/uk/fashion/style-files/news/g30003/a-history-of-chanel/?slide=4
4)terms.naver.com/
5)fr.wikipedia.org/wiki/
6)www.marieclaire.co.uk/beauty/chanel-no-5-123744
7)thegenealogyofstyle.wordpress.com/2015/03/14/jean-cocteau-and-the-incomparable-coco/
8)www.artnet.com/artists/salvador-dal%C3%AD/chanel-grand-central-powder-room-Ua3_U9vF6ODX3xGMwEeSHA2
9)www.loeilde.fr/bles-de-mademoiselle-chanel/
10)채금석, 1995, 현대복식미학, 경춘사